장부를 정리하다 3년도 더 지난 미수금을 발견하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이건 이제 못 받는 돈인가” 싶어 그냥 지워 버리고 싶어지죠.
그런데 시효가 지났다고 해서 채권이 저절로 없어지는 건 아니에요. 아직 받을 수 있는 길이 남아 있는지 먼저 보고, 그다음에 세금으로 정리해도 늦지 않습니다.

⏰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권이 그냥 사라지나요?
아닙니다. 적어도 재판에서는 채무자가 “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해야 반영됩니다. 법원이 기록을 보고 알아서 “이건 시효 지났네요” 하고 깎아 주지 않아요.
민사재판은 당사자가 주장한 것만 판단합니다. 그래서 시효가 완성된 채권으로 지급명령이나 소송을 걸었는데 채무자가 아무 대응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될 수 있어요.
물론 이걸 노리고 소송을 거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채무자가 한 줄만 써 내면 지고, 그때는 소송비용까지 내가 부담하니까요.
그럼 시효가 지난 뒤에도 실제로 돈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뭐가 남아 있을까요?
🧭 시효가 지나도 남아 있는 길, 세 갈래
상계·그대로 청구·시효이익 포기, 이렇게 세 갈래입니다. 이 중 실무에서 가장 확실한 건 첫 번째예요.

| 남은 길 | 되는 조건 | 근거 |
|---|---|---|
| 상계 | 시효 완성 전에 이미 서로 갚을 때가 됐을 것 | 민법 제495조 |
| 그대로 청구 | 채무자가 재판에서 시효를 주장하지 않을 것 | 변론주의 |
| 시효이익 포기 | 시효 지난 사실을 알고 갚겠다는 뜻이 드러날 것 | 민법 제184조 |
세 번째는 채무자가 협조해야 성립하고, 두 번째는 운에 맡기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확인할 건 첫 번째, 상계예요.
🔁 거래처에 갚을 돈이 있다면? 상계가 답입니다
시효가 완성된 채권도 상계에는 쓸 수 있습니다. 민법 제495조가 정면으로 그렇게 정하고 있어요.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이 그 완성전에 상계할 수 있었던 것이면 그 채권자는 상계할 수 있다. — 민법 제495조
상계(서로 주고받을 돈을 맞비겨 없애는 것)는 상대의 동의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통지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소송도, 집행도 없이 회수가 끝나요.
다만 조건이 하나 붙어요
내 채권의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이미 양쪽 채권이 상계할 수 있는 상태였어야 합니다. 대법원도 이 요건을 분명히 하고 있어요 (대법원 2016. 11. 25. 선고 2016다211309 판결).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내가 받을 돈의 시효가 끝나기 전에, 내가 거래처에 갚아야 할 돈도 이미 갚을 때가 지나 있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이 순서를 뒤집는 분이 많습니다. 시효 지났다고 장부에서 지운 뒤에 그 거래처에 외주비를 그냥 송금해 버리는 거죠. 지우기 전에 반대 채무가 있는지부터 확인하세요.
그럼 거래처가 “갚겠다”며 각서를 써 준 경우는 어떨까요? 여기서 2025년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 2025년 7월, 대법원이 58년 된 법리를 뒤집었어요
시효가 지난 뒤 채무자가 빚을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시효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하지 않습니다. 2025년 7월 24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전 판례를 변경했습니다 (2023다240299).

예전에는 이랬어요. 시효가 지난 뒤에 채무자가 “네, 그 돈 제가 갚아야죠”라고 인정하면, 시효 완성 사실을 알고 그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1967년부터 이어진 법리였어요.
전원합의체는 이 추정을 폐기했습니다. 채무를 인정하는 행위 하나만으로 “시효가 끝난 걸 알고 있었다”와 “그 이익을 포기하겠다”를 한꺼번에 추정하는 건 경험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어요. 실제로 채무자 대부분은 시효가 지났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니까요.
채권자 입장에서 뭐가 달라지나요
증명 부담이 채권자 쪽으로 넘어왔습니다.
- 예전: 각서·일부변제만 있으면 포기로 추정 → 아니라고 다투는 건 채무자 몫
- 지금: 포기 의사가 있었다는 걸 채권자가 드러내야 함
각서를 받아 두면 무조건 안심이던 시절이 끝났다는 뜻이에요. 시효 지난 채권을 놓고 채무자와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은 기록만 잔뜩 모아 둔 경우, 예전만큼 힘을 못 씁니다.
🖋️ 그럼 각서는 어떻게 받아야 하나요?
“시효가 완성된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인식과 “그래도 갚겠다”는 의사가 문면에 드러나야 합니다.
이제 각서에는 최소한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해요.
- 채권을 특정: 거래 내역, 지급기일, 남은 금액
-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문장
- 그럼에도 변제하겠다는 의사, 그리고 새로 정한 변제기
- 작성일과 서명·날인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시효 포기는 완성된 뒤에만 됩니다.
민법 제184조 제1항은 “소멸시효의 이익은 미리 포기하지 못한다”고 정해요. 거래 기본계약서에 “채무자는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다”는 특약을 넣어 봐야 그 부분은 힘이 없다는 뜻입니다.
애초에 이 지경까지 오지 않는 게 최선이긴 해요. 지급기일이 지난 건에 내용증명을 보내거나 지급명령을 신청하면 시효가 중단되니까요. 매달 미수 목록을 사람이 눈으로 훑는 게 부담이라면 청구와 미수 관리를 자동으로 돌리는 방법도 있어요.
여기까지 확인했는데도 받을 길이 없다면, 이제 세금 쪽을 정리할 차례입니다.
💰 못 받게 됐다면 세금으로 돌려받으세요
소멸시효가 완성된 외상매출금·미수금은 대손금으로 인정됩니다. 그리고 이건 시기를 고를 수 없는 항목이에요.

법인세법 시행령 제19조의2 제1항은 대손금으로 인정되는 채권을 열거하는데, 그중 앞자리가 시효 완성 채권입니다.
- 제1호: 「상법」에 따른 소멸시효가 완성된 외상매출금 및 미수금
- 제4호: 「민법」에 따른 소멸시효가 완성된 대여금 및 선급금
- 제2호·제3호는 어음법·수표법에 따른 시효가 완성된 어음·수표
왜 “시기를 고를 수 없다”고 하나요
같은 조 제3항 제1호가 이렇게 정합니다. 제1호부터 제6호까지에 해당하면 그 사유가 발생한 날이 속하는 사업연도의 손금이에요.
이게 이른바 신고조정 항목입니다. 장부에 비용으로 안 적었더라도 세무조정으로 손금에 넣을 수 있고, 뒤집어 말하면 그 사업연도에 넣지 않으면 다른 해로 미룰 수 없습니다.
거래처 폐업이나 부도처럼 결산에 반영한 해에 손금이 되는 항목(결산조정)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에요. 둘의 차이는 대손금 손금산입 요건 글에서 표로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실무 순서는 이렇게 됩니다. ①시효완성일을 날짜 단위로 확정 → ②상계 등 회수 경로 점검 → ③그 사업연도에 신고조정 → ④부가세 대손세액공제.
첫 단계가 의외로 오래 걸립니다. 지급기일이 언제였고 그 뒤에 부분 입금이 있었는지 확인해야 날짜가 나오거든요. 거래별 청구·입금 이력이 정리돼 있지 않으면 이 단계에서 며칠이 사라집니다.
🧾 부가세 대손세액공제도 같이 챙기세요
법인세로 비용 처리하는 것과 별개로, 이미 낸 부가세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87조 제1항 제1호는 대손세액 공제 사유로 법인세법 시행령 제19조의2 제1항에 따라 대손금으로 인정되는 경우를 들고 있어요. 시효 완성 채권이 여기에 그대로 들어옵니다.
기한은 같은 조 제2항입니다. 공급일부터 10년이 지난 날이 속하는 과세기간에 대한 확정신고 기한까지예요. 공제액은 대손금액에 110분의 10을 곱한 금액이고, 확정신고 때만 가능합니다.
요건과 서식은 대손세액공제 요건과 신고 방법 글에서 자세히 다뤘어요. 앞으로의 대손을 미리 비용으로 잡아 두는 대손충당금 쪽도 같이 보시면 좋습니다.
⚠️ 흔한 실수 3가지
하나. 시효 지난 채권을 장부에서 먼저 지우고 상계를 확인합니다. 순서가 반대예요. 지우기 전에 그 거래처에 갚을 돈이 있는지부터 봅니다.
둘. 각서만 받고 안심합니다. 2025년 7월 이후로는 시효 완성 사실을 안다는 문구가 없으면 다툼의 여지가 큽니다. 문구를 넣어 다시 받는 게 안전해요.
셋. 없는 절차를 있다고 말합니다. 시효 지난 채권을 독촉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지는 않지만, 소송이나 압류가 진행되고 있지 않은데 진행 중인 것처럼 말하면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4호 위반이에요. 국가기관의 행위로 오인할 서식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조 제2호).
📌 이것만 기억하세요
- 시효 완성 = 채권 소멸이 아닙니다. 재판에서 채무자가 주장해야 반영돼요
- 가장 먼저 상계를 확인하세요. 시효가 지났어도 됩니다 (민법 제495조)
- 각서에는 “시효 완성을 안다”는 문구를 넣으세요. 2025년 7월 전원합의체 이후의 기준입니다
- 미리 포기시키는 특약은 무효입니다 (민법 제184조 제1항)
- 대손은 시효완성일이 속한 사업연도에 신고조정. 놓쳤으면 경정청구 5년
- 부가세 대손세액공제는 공급일부터 10년이 지난 날이 속하는 과세기간의 확정신고 기한까지
시효가 지난 채권을 정리하는 일은 결국 날짜 싸움입니다. 지급기일이 언제였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다 남아 있어야 상계도 대손도 제때 판단할 수 있어요. 지금 장부에 3년 가까워지는 미수가 있다면, 그게 오늘 할 일입니다.
💡 3년 지나 시효가 끝난 미수금을 지금 발견하셨다면
시효가 완성되는 채권의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지급기일이 지난 뒤로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이죠. 청구서 발송과 입금 확인이 자동으로 돌고 미납 건에 리마인드가 나가면, 3년을 넘길 일 자체가 잘 생기지 않습니다. 청구·수금·미수관리를 한 흐름으로 굴리는 청구스 도입 기업은 1개월 이상 연체가 84.3%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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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법령정보센터 — 민법 제495조(소멸시효완성된 채권에 의한 상계)
- 국가법령정보센터 — 민법 제184조(시효의 이익의 포기 기타)
- 국가법령정보센터 — 민법 제163조(3년의 단기소멸시효)
- 국가법령정보센터 — 상법 제64조(상사시효)
- 대법원 2025. 7. 24. 선고 2023다240299 전원합의체 판결(시효완성 후 채무승인과 시효이익의 포기)
- 국가법령정보센터 — 법인세법 시행령 제19조의2(대손금의 손금불산입)
- 국가법령정보센터 — 부가가치세법 시행령 제87조(대손세액 공제의 범위)
- 국가법령정보센터 — 국세기본법 제45조의2(경정 등의 청구)
- 국가법령정보센터 —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 제11조(거짓 표시의 금지 등)